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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은 정조대왕의 철학이 고스란히 깃든 도시였다. 정조대왕이 화성을 건설한 것은 아버지의 묘를 옮기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백성들의 생활이 더욱 편리하고 번창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파를 통제하고 강력한 왕권 확립을 목표로 삼기도 했다. 화성 건설을 통해 개혁정치를 펼치고, 실제 학자들을 비롯한 인재들을 고르게 영입하려 했던 것이다.


화성의 건설에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던 정조는 화성의 설계를 조선의 대표적 실학자이자 작가인 정약용에게 맡겼다. 실학과의 초기 만남을 가진 정약용은 전통적 방법을 바탕으로 중국을 거쳐온 서양 도시 관련 서적을 참고해 화성을 설계했다.


정약용은 1년여의 연구 끝에 도시의 기본틀과 구체적인 건축방법을 상세히 기술한 '성설'이라는 보고서를 완성해 정조를 위해 바쳤다.


디자인은 정약용이었지만 화성의 건설부장은 '채줄'로 영우정이었다. 채용은 정약용, 박지원, 홍대용, 박제이, 화성건설감독관 바사태 등 젊고 재능 있는 학자들을 적극 후원했다.


화성 건설은 1794년 1월에 시작되어 1796년 9월 초에 끝났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2년 9개월 만에 완공됐다. 정약용은 정약용이 디자인한 첨단 기계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도 돈을 주고 열심히 일하게 했다.


화성이 완성되자 정조는 그해 10월 16일 축하연을 열었다. 수원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도 매년 10월 정조의 방문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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