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원화성의 축성은 정조대왕의 효성에 시작되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장헌, 왕세자)는 조선 왕조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영조의 차남인 사도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당쟁을 희생하고 궁지에 몰려 죽었다.


정조는 11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했다. 정조대왕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깊이 헌신했지만, 슬프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효도 또한 대단했다.


정조가 즉위하자 사도세자의 묘를 '수은묘'에서 '연우원'으로 개칭하였다. 몇 년 뒤 경기도 양주시 배봉산(지금의 서울 휘경동)에 있는 사도세자의 무덤이 명소로 꼽히는 수원(지금의 경기도 화성)의 화산으로 옮겨졌다.


묘의 명칭은 '영우원'에서 '현릉원'으로 바뀌었다. 그 후 사도세자에게 장조(張祖)라는 칭호가 주어졌고, 묘는 '용릉(龍陵)'으로 개칭되었다.


이곳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사도세자의 무덤을 화산으로 옮겨야 했다. 그래서 화산의 사람들은 이주할 도시를 만들어야 했고, 팔달산 아래에는 신도시인 화성이 건설되었다.

댓글